생이가리 2006. 5. 29. 18:53
 

원문

二 法會聽衆三 初聲聞 次菩薩 後人天

註解釋

이 경은 방편을 거두어 실상에 돌아간다.

성문이 적당한 근기이므로 처음에 성문을 나열하며

보살은 곧 주반(主伴)의 대중이요.

인관과 천신은 외호(外護)하는 대중이다.


初聲聞衆二 初 無學衆

與- 大比丘衆- 萬二千人으로 俱러시니

皆是大阿羅漢이라 諸漏已盡하야 無復煩惱하며

建得已利하야 盡諸有結하고 心得自在러시니


解 義

큰 비구중 일만 이천 인으로 더불어 함께 하시니,

이는 다 아라한이라. 모든 누가 이미 다 하였으며,

다시 번뇌가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얻음에 미치며,

모든 결박이 다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었으니,


註解釋

부처님을 항상 따르는 대중(常隨衆)이 일천이백오십

人이었는데, 이제 일만이천을 말한 것은 다른지역에서

온 귀빈, 내객까지 합한 숫자이다. 아라한은 뜻으로

번역하면 살적(殺賊)이니 번뇌의 적을 없앰이요.

응공(應供)이라고도 하니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며, 불생(不生)이라고도 하니 다시는 윤회 갈래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착하고 조용한 마음이 전일(全一)하지 못하여 끈끈하고

차분하게 식(識)이 발생하여 모든 경계를 향해 달려

나아가니, 이를 일러 누(漏)라 한다. 모든 누란

욕망의 누, 존재(有)의 누, 무명의 누다.

모두 끈끈하고 잠잠한 망식(妄識)으로 체(體)를 삼아

삼계의 번뇌를 일으키는 그 근본이 된다.

번뇌는 곧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등 십사(十使)니

모든 누의 연(緣)이 된다.

법신을 살해하고 올바른 성품을 협박하고 고달프게

하는 것이 번뇌적(煩惱賊)이다. 누가 다하고 번뇌가

없다고 하는 것은 근본인 누가 다했으니 반연인

번뇌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소위 살적이다.

자기의 이익은 지혜를 증하고 미혹을 끊는 일이다.

문구에 이르기를 <삼계의 인과가 다 남을 위하는 일이요

지혜를 증하고 미혹을 끊는 공덕(智斷功德)이라야

비로소 자신을 이롭게 한다>하였다. 자기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면 인간과 천상의 복전이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응공이라 한 것이다.

율문에 <무릇 공양을 대함에 있어서 모름지기 자기의

덕행이 온전한가 부족한가를 헤아리는 자는 자기의

이익을 헤아릴 수도 있다.> 대저 몸을 수고롭게 일을

했으면 단정히 앉아 식사를 하고, 공손하게 예배하거든

거꾸로 서서 받나니, 진실로 자기의 덕이 없으면 그 해가

적지 않다. 행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모든 존재의 번뇌가

다하였다(盡諸有結)고 하는 것은 미혹과 습기 업이 다함이다.

이는 미혹과 습기의 업은 二五 유(有)의 생인(生因)이다.

원인이 다하면 결과도 없어지니 이것이 불생(不生)이다.

소승은, 선정은 있으나 지혜가 없기에 잔뜩 묶이기만

하여 아직 자재를 얻지 못하였다. 이제 마음에 자재를

얻었다고 했으니 이는 선정과 지혜가 양족(兩足)하여

함께 해탈한 사람이니, 대아라한이 곧 영향중임을

밝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