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감히 꺾을 생각 조차 할 수 없는 신령한 꽃
연꽃 / 김영은
꽃은 그냥 피어날 뿐이지만
진흙 속에 당한 수모
천년 세월 거스르며
仙界의 선한 마음 중생을 淨化하며
인과 도리의 꽃을 피운다.
내밀한 상징의 연화
혼탁한 세상
향기 바가지를 빼앗겨도
곧은 절개는 향기로워
청정묘법의 꽃
심청이가 연꽃으로 들어가
냉혹한 현실에 수장돼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정신은
겹겹의 업보로 다시 피어나는
진리의 설법
한해살이 짧은 생을 살지만
하늘 향해 솟아오른 꽃 대궐속의 꽃 대궁
聖子의 몸처럼 귀티난다.
연꽃의 전설
연꽃 부다가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룸비니 동산에는 그 발자국마다 연꽃을 새긴 전돌이 박혀있다.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도를 깨치고 걸어 나가는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었다 해서 연꽃모양의 석대가 나란히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부다와 연꽃은 떼어 생각 할 수가 없다. 바로 그 성도 성지 이웃에 불성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 피어 있는 연꽃이 이 세상 불교국가들에 번져 있는 연꽃의 원조라 한다. 성도 후 부다는 굶어 죽어가는 한 천한 여인으로부터 누더기 옷을 공양 받는다. 이 옷을 이 연못에 와 빨자 그 옷에 담긴 정성들이 알알이 연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다. 곧 불성지의 연꽃은 가난하거나 천하여 버림받은 자의 존재이유에 대한 불심의 보증인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옷을 적 셔 입고자 차례를 기다리는 순례자의 행렬을 볼 수 있다.
불자들은 보리수 잎과 불성지의 연꽃 씨앗을 얻어 가는게 2000년래의 평생소원이며 한국 연꽃 뿌리도 이곳에 갔던 삼국시대 스님이 얻어 심은 불성지의 자손 꽃일 확률을 배제 할 수 없는 것이다. 인도 창조신화에서 조물주 범천은 연꽃에서 태어나 최고의 지상신의 상징 식물이 돼 있으며 이를 불교가 받아들여 일련탁생사상을 펼친다.
극락세계에는 궁전이 있고 아미타여래의 설법소리가 들려오는 그 궁전 앞에 칠보로 만든 못에 여덟 공덕수가 넘치는데 홍련화 청련화 백련화 황련화가 무수히 피어있어 이 어느 한 연꽃 위에 다시 태어난다는 내세관이다. 물에서 태어났으면서 물을 묻히지 않고 흙탕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오염되지 않은 그래서 오염 투성인 속세에서 삶의 지표를 제시해 준 연꽃인 것이다. 연자는 운치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 두루 좋은 약재로도 유명하다.
(본초강목)에 말하기를 , 연은 심심의 기력을 돕고 모든 병을 물리치니 장복하면 몸이 가벼워져서 늙음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연자가 이처럼 약효가 뛰어난 것은 호아당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연자의 생명력은 실로 놀라운 바가 있기 때문이다. 연자는 껍데기를 벗기지 않으면 땅속에서 무려 삼천년을 견딘다고 한다. 어떤 일본인 학자가 이탄층에서 발견한 연 씨를 발아시키는데 성공했는데, 그 지층의 연대가 대략 삼천 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생명의 끈기와 그 신비에 새삼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그런데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에도 아킬레스의 복숭아 뼈 같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반드시는 아니겠지만 상생이 있는가 하면 상극이 있는 법이다. (양화 소록)에 의하면 오동기름을 연잎을 딴 다음 그 뚫린 줄기 속에 두어 방울만 부어도 연못의 연꽃이 다 죽고 만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감히 실험이 허용될 수 없는 것. 다만 마음에 새겨서 경계할 일이리라. 이 밖에 연을 심을 때도 주위 해야 할게 하나 있다. 홍련과 백련을 같은 연못에 심어도 좋지만 서로 가까이 심으면 홍련이 성하면 백련이 쇠하고, 백련이 성하면 이번엔 홍련이 쇠하고 말기 때문이다. 대개 홍련이 더 강하지 않나 생각되는데, 우리나라 연못은 거의가 홍련이고, 백련이 적은데 혹시 그렇게 해서 백련이 도태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좁은 물둠벙 같은 곳에 심을 때에는 각각 다른 그릇에 심도록 해야 할 일이다. 연꽃은 다른 말로는 정우(淨友 )또는 화중군자라 하여 사군자에 넣기도 한다. 꽃만을 말 할 때는 하화 (荷花 ) 또는 부용(芙蓉 ) 이라 한다. 미인의 걸음걸이를 미화해서 연보(蓮步 ) 라 하고, 껍데기를 벗긴 것을 연륙(蓮肉 )이라 한다. 연꽃의 향기는 홍련보다 백련이 승하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백련향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 강진군 성전면의 금당지에 백련이 자란다. 피는 시기는 칠팔월이며 ,피는 시각은 새벽4시경이다. 해보다 한 발 앞서 피는 것이 연꽃이다. 참고로 연꽃은 스리랑카의 국화이다.
암자의 소녀
연꽃은 더러운 연못의 진흙 속에서도 아주 잘 자라 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아무리 더러운 물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는 커다란 잎, 물의 깊이에 따라 적응하는 줄기, 수명이 길고 단단해서 좀체 썩지 않는 연씨, 이래서 불교에서는 소중히 여기는 꽃이다. 그래서인지 연꽃에 얽힌 전설은 주로 불교와 관련이 있다. 옛날 어느 부잣집 딸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비구니가 된 소녀는 열심히 불도를 닦아서 아미타불을 친견하지 않고는 절을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소녀는 암자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고 열심히 수련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한 비구니가 찾아왔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비구니는 보통 스님이 아닌 듯했다.
"나는 그대에게 정통에 계신 아미타불을 보여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할 일이 있느니라. 연줄기 백 다발을 준비하거라."
열심히 수련을 하던 소녀는 속세에 있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는 즉시 전국에 있는 연줄기를 모아 백 다발을 만들어 보냈다. 소녀는 그것을 비구니에게 바쳤다. 비구니는 연줄기를 하나하나 꺾더니 그 속에서 실을 뽑아냈다. 그 다음에는 샘을 봤다. 맑은 물이 나오자 연줄기에서 뽑아낸 실을 씻었는데 "오색 빛깔이 나는 비단실로 변했네!" 며칠 뒤에 또 다른 비구니가 찾아왔다. 그녀는 비단실을 보더니 베틀을 차리고 베를 짰다. 그 비구니가 짜는 베에는 극락세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극락세계를 본 소녀는 몹시 기뻐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돌아봤다. 그랬더니 베를 짜던 비구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때 첫 번째 비구니가 다시 나타났다.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대의 정성에 감동하여 내가 왔노라. 그래도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깊이 깨우치도록 하라." "고맙습니다. 스님, 하온데 스님은 누구시며 지난번의 스님은 또 누구십니까?" 비구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유유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 비구니가 바로 아미타불이고, 베를 짜던 비구니는 관음보살이라고 했다. 소녀는 지극한 정성으로 소원을 이룬 것이다.
불교를 상징하는 꽃, 하면 누구나 연꽃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연못에 핀 연꽃의 청초한 모습을 보면 세상에 이처럼 깨끗한 것도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데 정말 연꽃만큼 순수하고 티 없이 맑은 빛깔의 꽃도 흔치 않을 것이다. 진흙탕에 핀 연꽃이지만 주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서 예로부터 '성자(聖者)의 꽃'이라 불리어 왔다.
연꽃은 웅덩이에서 자란다. 물이 있으면 우선 시원하다. 인도라는 열대성 기후대에 속한 땅에 사는 사람들은 물이 있는 인더스 강을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불교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터전, 즉 열반에 드는 것을 '물이 불을 끄는 일' 에 비교한다. 뜨거운 불기둥 같은 땅에서 더위와 고통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연못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최고의 안락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물속에 고귀한 연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바램이겠는가?
그래서 연꽃을 부활의 상징으로 보았고 재생의 기운을 타고난 꽃으로 보았고 《무량수경(無量壽經)》에 의하면 '극락세계의 보련화(寶蓮華)에는 백 천억 개의 잎이 있고, 그 잎에서는 수많은 광명이 비치며, 하나하나의 빛에서 부처가 나타난다고 적고 있으며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에는 '목숨이 다한 뒤에 극락세계로 가거나 칠보로 장식된 연화세계에 다시 태어난다고 했다.
불교 경전에서는 연꽃이 피는 세계를 낙원으로 본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에는 향수가 가득한 바다에 거대한 연꽃이 떠 있고, 그 연꽃 속에 비로자나여래가 사는 화장장엄세계해(華藏莊嚴世界海)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오래된 늪지나 연못에 연꽃이 널리 분포하고 있지만 언제부터 자라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5세기 경 일본의 웅략왕(雄略王) 때 중국의 연꽃이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그 이전에 한반도에서는 연꽃을 널리 재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연꽃은 처음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신성한 꽃이었으나 약용 또는 식용으로 쓰이면서 민간으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또 연꽃은 해를 걸러 꽃을 피우는 괴상한 연꽃이라며, 연씨는 백 년을 지나도록 상하지 않고 연근은 땅에 버려두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시대 때는 전라도 김제와 만경에서 연(蓮), 마름(菱), 순채(蓴)가 많이 난다고 했다. 또 경산과 황해도 연백에서 나는 연실(蓮實)을 토산품으로 치고 있다.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연못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연꽃을 심어 연근을 식용, 약용, 관상용으로 즐겼을 것이다.
유래가 가장 확실한 연꽃은 시흥 강씨 고택의 연못에서 자라는 옥순(玉脣)이라는 품종이다. 백련으로 꽃잎 가장자리에 붉은 줄이 둘러져 있는 지극히 아름다운 꽃이다. 이 연꽃은 조선 세종 때의 명신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선생이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갖고 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간송미술관, 독립기념관, 아산 인취사(仁翠寺) 등지에 분양되었는데 해마다 고운 꽃을 피운다. 옥순을 심은 강희맹 선생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쓴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선생의 아우로 시·서·화 삼절로 당대의 이름을 더 높인 분이시다. 사숙재 선생은 《금양잡록(衿陽雜錄)》이라는 농업서적을 남겼을 정도로 식물학 지식이 뛰어난 분이시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중국에 갈 때마다 조선에 없는 백송이나, 회화나무, 석류, 좋은 품종의 매화, 모란 등을 갖고 왔다. 사숙재 선생이 얼마나 많은 식물종을 조선으로 갖고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옥순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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